캉디드, 볼테르 저, 현성환 옮김, 아로파, 2016.
18C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하면 볼테르, 장 자크 루소가 유명하죠. 볼테르는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당시 종교나 사회에 대해 유머와 위트로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의 사상이 프랑스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694년 프랑스 파리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본래 이름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입니다. 1717년 섭정 오를레앙 공에 대한 풍자시 <오이디푸스>를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해서 큰 성공을 거두지만 투옥되기도 합니다. 그는 귀족과 갈등을 빚다가 영국 망명을 조건으로 풀려나기도 합니다. 그는 영국에서 정치적, 사상적 자유를 체험하고 프랑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철저히 느끼고 <영국인들에 관한 편지 혹은 철학 서간>을 발표하여 프랑스 사회에 큰 영향을 일으키고 체포령이 떨어져 연인의 성에서 10년 간 은거하며 책을 쓰고 연구를 계속합니다. 그는 끊임없이 왕정과 갈등을 일으켜 신임을 잃고 외국으로 방랑을 하면서 책을 씁니다. 그는 평생을 부당한 권력과 교회에 대항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삶을 삽니다.
캉디드는 베스트팔렌 지방의 툰더텐트론크 남작의 성에서 태어나 가정교사 팡글로스 선생의 수업을 받으며 자라납니다. 그는 캉디드에게 형이상학적, 신학적, 우주론적 바보학을 가르칩니다. 여기서 ‘바보학’은 캉디드 전체가 우주론이나 철학에 대한 풍자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팡클로즈 선생은 캉디드가 살고 있는 툰더텐트론크 성이 지상낙원이며 늘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말하고 캉디드는 이 말을 믿습니다. 그러나 퀴네공드와 사랑에 빠진 캉디드는 남작에게 들켜 성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그때부터 캉디드는 이 세상을 정처없이 방황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좋은 낙원을 찾기 위한 방랑이 시작된 거죠. 그는 떠돌면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거지, 노파, 창녀, 뱃사람, 상인, 선원, 부자, 왕 등 온갖 종류의 여러 나라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인생담을 듣습니다. 그때 늙은 노파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이 어떠했는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동안 나는 수도 없이 죽으려고 했어요. 그래도 여전히 사는 것이 좋더라고요. 이 우스꽝스러운 연약함은 아마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성향 중 하나일 거예요. 땅바닥에 내팽개쳐 버리고 싶은 이 무거운 짐을 계속 지려는 것보다 더 바보 같은 짓이 어디 있겠어요. 자신의 존재를 끔찍이도 싫어하면서 그것에 집착하다니요. 결국에는 우리를 집어삼키고 있는 뱀을 어루만지는 꼴이지요. 그것이 우리의 심장을 먹을 때까지요! 나는 운명에 이끌려 돌아다닌 여러 지역과 내가 일하던 선술집에서 자신의 삶을 증오하는 사람을 엄청나게 많이 보았어요. 그렇지만 그중에서 자신의 가련한 삶을 자발적으로 끝낸 이는 겨우 열두 명뿐이었죠. …중략… 나는 많은 것을 겪었고 세상을 알아요. 재미 삼아 배를 탄 이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말해 달라고 하세요. 자기 인생을 거의 매일 저주하지 않는 사람, 자신이 인간들 중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스스로 되뇌지 않는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나를 머리부터 처박히게 바다에 내던져도 좋아요.“ p60-61.
노파는 다정하고 부유한 왕가에서 태어나 축복받은 공주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가 해적들의 침입을 받고 어떻게 부모님과 헤어져 험난한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캉디드는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나라에도 가서 금덩이가 길바닥에 돌덩이처럼 굴러다니는 곳에서 돈이 없어 금덩이로 밥값을 치르다가 엄청난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엄청난 부를 가진 귀족의 저택에서는 이 세상의 뛰어난 화가의 그림이라는 그림은 다 걸어두고 있음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귀족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세파에 시달리고 온갖 경험을 다 해 본 캉디드는 ‘자신의 정원을 잘 가꿔야 한다’는 귀중한 인생의 교훈을 이야기하며 끝을 맺습니다. 캉디드는 볼테르 자신의 인생 경험에서 비롯된 주인공이죠.
볼테르는 자신의 정원을 잘 가꾸는 것, 즉 노동이 권태와 방탕, 가난이라는 세가지 악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교훈을 줍니다. 인간의 운명은 자신의 정원을 가꾸듯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노동을 통해서 인간은 태만과 무기력에서 벗어나 창조적이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원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짧으면서 강한 메시지를 주는 ‘캉디드’를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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