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민음사, 2012.
내가 엘크톤 힐즈를 떠난 가장 큰 이유는 주위에 가식적인 인간들만 우글거렸기 때문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이를테면, 교장인 하스 선생은 이제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끔찍한 인간이었다. 예를 들면 하스 교장은 일요일마다 학교를 찾아오는 학부모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돌아다니곤 했다. 지독할 정도로 사근거리면서 간혹 만만하게 보이는 학부모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p26
18살 고등학생 홀든. 제가 그 나이 또래에 느꼈던 어른들의 이중성과 가식적인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홀든의 모습에 꽤나 독특한 녀석이군 생각했었죠. 이런 장면은 사회 곳곳의 풍경이기도 합니다. 성당이나 교회, 절이나 어떤 단체 모임에 가도 이런 풍경은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지요. 아이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얼마나 불편할 지 사실 어른들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렇게 행동하는 어른도 가면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못 하니까요.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거죠. 아이들은 솔직하게 어른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합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이들이 아닐까 합니다. 아이들의 올바르고 순수한 생각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훨씬 달라지지 않을까요?
정말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책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한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자기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물론 그런 일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p32
저도 이 말에 공감 100퍼 입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홀든과 친구가 되고, 피비의 귀여움과 오빠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주고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랑스러움에 폭 빠져서 작가와도 친구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언제든 작가에게 전화해서 책을 읽으며 느꼈던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싶어지더군요.
홀든은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죠. 그래서 샐린저도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자 찾아온 영화감독에게 "홀든이 싫어할 거 같아서"라며 거절하죠. 그래서 결국 만들어진 영화가 '호밀밭의 파수꾼'이 아닌 작가 샐린저를 주인공으로 2017년 개봉한 '호밀밭의 반항아'입니다.
"그래, 대답해 줄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말하라는 거니, 아니면 약간이라도 좋아하는 걸 말하라는 거니?"
"진짜 좋아하는 것" p225
....
"한 가지라도 좋은 걸 생각해 낼 수 없는 거지?"
"그렇지 않아.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니까"
"그럼 어서 말해 봐"
"앨리가 좋아.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해. 이렇게 너랑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앨리 오빠는 죽었어. 오빠는 늘 이런 말만 해! 사람이 죽어서 천당에 가고 나면 그때는...."
"그 애가 죽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내가 그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니? 그래도 좋아는 할 수 있는 거잖아. 죽었다고 좋아하던 것까지 그만둘 수는 없는 거 아니야? 더군다나 우리가 알고 있는 살아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천 배나 좋은 사람이라면 더욱 말이야"
피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이였다. p22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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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 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p229-230
홀든을 처음 대했을 때 너무나 솔직하고 제멋대로인 이 고등학교 남학생에게 무척 당황했습니다. 학교를 네 번인가 다섯 번쯤 스스로 그만두거나 자퇴하거나 해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아이. 그런데 이 아이가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죽은 동생을 좋아하는, 그렇죠,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고 해서 좋아하는 마음조차 사라지지는 않죠. 이 말을 들으며 가슴 한 켠이 짠 했습니다. 그리고 10년 전, 세상을 떠난 동생이 떠오르더군요. 몇 년 지나지 않은 거 같은데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여동생 피비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쩔쩔매면서도 어른들의 가식적인 세계를 향해서는 냉소를 던지는 이 소년이 가진 단 하나의 꿈, 그것은 꼬마들을 지켜주는 파수꾼이었습니다. 말썽꾸러기 홀든의 꿈이 아이들을 지켜주는 파수꾼이라니 상상도 못 했어요. 그리고 또 한 번 가슴 한켠이 짠 했습니다.
왠지 어딘가에 홀든이 살고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전화를 걸어 홀든과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도 털어놓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리고 동생 앨리에 대해 묻고 싶었어요. 어떤 동생이었는지, 얼마나 다정했는지, 그리고 저도 제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