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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국사(사진 문경시) |
| 문경새재(18)
이정록
18.주흘산 혜국사(惠國寺)
절이란 원래 속세를 피하여 마을과 떨어진, 이를테면 닭의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깊은 산속에 숨어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변해가는 세월 탓에 대부분의 사찰들은 세속의 물결이 밀려들면서 조금씩조금씩 세속에 오염되어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세월인데도 혜국사는 세속의 물결이 거의 미치지 않는 옛 그대로의 싱그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십 수 년 전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혜국사까지 닿았지만 도립공원 내에 차량 통행을 금지한 덕택에 지금까지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사찰로 남아있게 되었다.
자동차길이 다듬어지기 전 혜국사는 여궁폭포 위쪽으로 이어지는, 지금은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이지만, 그때에는 혜국사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유난스레 돌이 많은 구절양장 산 능선을 돌아가는 숲속 산길은, 꿈결처럼 아련하여 먼먼 옛 추억들을 불러들이기에 적당한 그런 길이였다. 구절양장 돌길이 끝나고 골짜기로 접어들면서 수 십 길이나 되는 바위 절벽 밑을 지나야 하는데 발밑에는 또한 낭떠러지라 혜국사 가는 길은 한편 스릴이 있는 길이기도 하다.
골짜기로 들어서면 개울물을 여러 번 건너게 되는데 징검다리를 뛰어넘기도 하고, 외나무다리도 지나야 하고, 바위를 안고 돌아야 하는 험난한 길이다. 혜국사는 이렇게 접근하기부터가 만만치 않은 절이다. 제1관문에서 1.8km정도 떨어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어느 첩첩산중 못지않은 깊은 맛을 느끼게 하고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 이 절의 특징이다.
산 속 분지가 아닌 산등성이에 제비집처럼 몸을 의지하여 가까스로 둥지를 튼 혜국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김천 직지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성왕 8년(서기 846년) 보조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에는 법흥사(法興寺)라고 하였다. 고려말엽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서 잠시 머물렀다는 절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청허(淸虛), 송운(松雲), 기허(騎虛) 세 분 스님이 혜국사 절에 머물면서 승병을 일으켜 나라에 기여한 공이 많았다하여 그때부터 절 이름을 혜국사(惠國寺)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란을 겪으면서도 무탈했던 혜국사에 서기 1866년 대화재가 발생하여 경내의 대웅전과 강성루, 월현당, 관음루 등 모든 건물이 완전 소실되는 불행이 닥쳤다.
「한국사찰사전」 하권에 수록되어있는 가선대부 송산(松山) 전문기(錢文起)의 혜국사 중건기에 의하면, 고종3년 병인년(서기 1866년)의 대화재로 혜국사는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는데, 화재로 소실된 혜국사를 새로이 일으켜 보려고 혜국사 주지승이였던 송봉(松峯) 스님이 경상도 관찰사였던 이삼현(李參鉉) 관찰사에게 혜국사의 복원을 호소하여 시주로 2천냥을 기부 받았으나, 공사가 워낙 방대한데다가 스님의 수가 적고 사찰의 세력이 몹시 빈약하여 대웅전과 공양실 일부를 겨우 얽어 메어 본절에서는 기거할 곳조차 마련치 못하여 속암인 안정암에 머물면서 혜국사라는 명맥만 유지하였다.
이렇게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러 대화재가 발생한지 60주년이 되는 서기 1926년 다시 돌아온 병인년에 당시 혜국사 주지승인 만허(滿虛)스님이 김룡사의 승려 정문흠(鄭文欽)을 서기로 맞아들이면서 혜국사의 중건이 활기를 띄어, 공사 시작 7개월 만에 혜국사는 새로운 모습의 도량(道場)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관음전, 삼성각과 요사체가 있다. 대웅전은 경내 중앙부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요사체 뒤의 가파른 화강암으로 된 돌계단을 올라가면 그리 크지 않은 대웅전이 소담스럽게 방문객을 맞이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치마 박공지붕이다. 화강암을 잘 다듬어 기단을 짜 맞춘 다음 그 위에 수박석 초석 위에 기둥을 세웠는데 퍽이나 정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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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국사 관음전(사진 문경시) |
| 관음전은 경내 동쪽 화강암으로 된 가파른 계단 위에 있는데, 기단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하여 소박하지만 정갈한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각지붕이다. 삼성각은 경내 서쪽에 있으며, 이 건물 역시 가파른 돌계단 위쪽에 있다. 화강암으로 된 초석지면에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박공지붕으로 나무 조각이 퍽이나 아름다운 건물이다. 대웅전을 위시한 모든 건축물은 근년 들어 새로이 보수 공사를 하여 깔끔하게 단장을 하였다.
혜국사의 암자로는 안정(安寂), 은선(隱仙), 용화(龍華) 이렇게 세 암자가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혜국사에서 주흘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500m 가량 떨어진 안정암만이 현존할 따름이다.
혜국사의 유물로는 부도탑 4기가 전하고 있다. 자영당대사성연출세탑(慈影堂大師性演出世塔), 혜월당여상지탑(慧月堂呂尙之塔), 혜월당탑(慧月堂塔), 연곡당사신지출세탑(淵谷堂思愼之出世塔), 이렇게 4기의 부도탑이 혜국사 맞은편 산 능선에 봉안되어있다.
구한말 쓰러져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고 의병을 일으켰던 운강 이강년 선생이 새재 일원에서 의병 활동을 할 때에, 혜국사 스님들은 의병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했다는 기록이 운강 선생의 창의일록에 나와 있다. 혜국사 스님들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면, 언제고 기꺼이 나라를 위하여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혜국사의 전통을 근세까지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