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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6년 05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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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문학동네, 2017.


p76 나는 위트에게 감히 그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 ‘해변의 사나이’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하기야 그 말을 위트에게 했다 해도 그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해변의 사나이’들이며 ‘모래는-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우리들 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밖에 간직하지 않는다’고 위트는 늘 말하곤 했다.

p156 거대한 전기 당구대 위에서 때때로 서로 마주쳐 부딪치기도 하는 수천수만 개의 작은 당구공들처럼 파리 시내에서 오가는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따라가는 저 도전들 가운데서 서로 마주치는 도정들, 그런데 그것으로부터 이제는 아무것도, 심지어는 하나의 반딧불이 지나가면서 남기는 저 가느다란 빛의 줄무늬조차도 남은 것이 없는 것이다.

p233 때때로 다른 친구들이 가고 난 뒤 우리는 단둘이 ‘남십자성’에 남아 있곤 했다. 산장은 윌의 것이 되었다. 우리가 저 아래 눈 위로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던 그 마을을, 마치 성탄절 때 진열장 안에 만들어놓은 장난감들처럼 조그만 마을의 전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던 그 맑은 밤들을 나는 다시 살아보고만 싶다. 그런 밤이면 모든 것이 단순하고 걱정 없어 보였으며 우리는 미래를 꿈꾸곤 했다. 우리는 이곳에 정착하고 우리 아이들은 마을 학교에 다니고 지나가는 가축떼들의 방울 소리 속에 여름이 올 것이다... 우리는 행복하고 아무 일 없는 생활을 하리라.

p262 저녁 어둠이 내렸다. 저녁의 초록빛이 사위어가면서 함수호의 빛이 점점 더 흐릿해졌다. 물위에는 아직도 몽롱한 광채를 내면서 보랏빛이 감도는 그림자들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프레디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우리들의 사진들을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 사진들 속에는 어린 시절의 게이 오를로프의 사진도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그 여자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그녀가 눈썹을 찡그리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동안 나의 생각은 함수호로부터 멀리, 세계의 다른 끝, 오랜 옛날에 그 사진을 찍었던 러시아의 남쪽 어느 휴양지로 나를 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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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모호함이었다. 기억을 잃어버린 탐정의 이야기라는 것을 전제로한 이야기지만 그에게 동화되면서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일이 너무나 가느다란, 끊어질 듯한 실로 연결된 과거이고, 그러한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는 과정이 하나의 사진이나 장소, 특정 시간의 사건, 그 사진과 장소,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의 기억, 즉 기억에서 기억으로 남아있는 과거에 존재했던 사람들에 대한 실루엣일 뿐이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강변의 모래알에 짧은 동안 발자국을 남겼다 지워지는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고 그를 기억하는 어떤 이의 기억 속에 잠시 남겨졌다 어떤 이의 소멸과 함께 존재했는지조차 모르는 무로 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그래서 씁쓸하고 허무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지금 현재의 삶을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는 역설이 숨어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기억하는 사람도 없는데, 그저 담담하게 현실을 살아내면 그만일텐데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 걸까? 잊혀지더라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기억에는 아름답게 남는 것은 지층 속에 새겨진 화석 만큼이나 귀하고 변치않는 그 무엇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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