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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조태학 |
| 일문육절, 계유정란의 소용돌이 속에 한 가문에서 여섯 명의 충신이 났습니다. 매설헌(휘 완규)과 그의 동생 판관공(완주), 사촌 동생 월계당(휘 종경)과 세마공(휘 이경) 그리고 두 아들 범과 사까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의 가산은 적몰되어 집은 한명회와 익현군 이관에게, 아내와 딸, 누이는 연좌되어 신숙주, 윤자운, 유사의 노비가 되었습니다.
매설헌은 조정의 관료가 아니었지만 할아버지께서 태종묘에 배향된 충무공(휘 영무)이었고, 부친(휘 전)은 남원부사였기에 사가독서하며 당대 정계의 주요 인물인 안평대군과 절제공(김종서), 매죽헌(성삼문), 취금헌(박팽년), 문두(성담수) 등과 교유하며 시사를 자주 논했고 수양대군의 전횡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하고 어린 단종을 바로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계유정란 때 절제공이 사사되고 안평대군이 역모로 몰려 유배될 때 안평대군의 당으로 몰려 매설헌도 강원도 회양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이때 큰 아드님(휘 범)은 몇 리를 못 가 피를 쏟고 돌아가시고 그 자손이 경기도 양주 해유리에 은거하였고, 둘째 아드님(휘 사)은 경산부(지금의 성주)의 관노가 되어 노곡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동생(휘 완주)과 사촌(종경, 이경)도 함께 유배되어 이듬해 교형을 받고 사사될 때 동생과 사촌들도 자재하거나 유배지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매설헌은 정조 15년(1791년) 영월에 있는 장릉 아래 배식단을 마련하고 충신들을 제사지낼 때 조사위에 배식되었습니다. 이보다 앞서 성종 2년(1471년)에 인동현에 정속된 매설헌의 두 아드님은 석방되었고, 익종대리(1828년) 때 서울 선비 김이혁의 상언과 영남 15개 서원에서 뜻을 모아 매설헌의 증직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려 사헌부 지평에 증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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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조태학 |
| 한양조씨중추공파종회(회장 조기오)는 매설헌(7세 지평공 완규) 선생을 기리는 향사를 5월 3일(3월 중정일, 음력 3월 17일) 매설당(경북 칠곡군 석적읍 포망로 79-32)에서 엄숙하게 봉행하였습니다.
이 자리에 서울·경기 지역 충무공파 종회에서 8명, 지역 성균관 유림 8명, 중추공파종회 후손 등 30여 명이 참석하여 홀기에 따라 향사를 올렸으며, 헌관으로는 초헌관에 중추공파종회 조기오 회장, 아헌관에 충무공파종회 조태경 회장, 종헌관에 한양조씨대종회 조춘희 고문이 헌작하였습니다.
중추공파종회은 앞서 4월 12일 임시회를 갖고 이번 향사에 참례할 제집사를 분정하고, 5월 2일 15시에 습례를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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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조태학 |
| 제집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직일에 이종춘 칠곡군단민회 회원, 집례에 최민상 칠곡군단민회 회장, 축에 이우석 칠곡청년유도회 회장, 알자에 우태주 칠곡군단민회 사무국장, 찬인에 장지균 인동향교 장의, 진설에 조택환 전 인동향교 전교, 조태학 충무공파 사무국장, 봉향에 이종분 인동향교 여장의, 봉로에 조창원 충무공파 종원, 조병춘 중추공파 부회장, 봉작에 조기석 감사, 전작에 조대환 재무, 사준에 조진향 종원, 찬창에 조기윤 총무, 학생에 조사선 전 충무공파종회 회장, 조병정·조용희 고문, 조태창 충무공파 종원, 조정희 전 충무공파 감사가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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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조태학 |
| 조기오 중추공파종회 회장은 “비가 오는 날씨에 먼 곳에서 찾아주신 충무공파종원들과 칠곡 유림회원들, 본회 종원들께 감사드리고, 조상의 얼을 되새기고 전통을 잇는 향사에 더욱 많은 종원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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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조태학 |
| 조태경 충무공파종회 회장은 “매설헌 선생은 한양조씨 일문육절의 충신으로 단종조의 자랑스러운 선조시며, 선생을 기리기 위한 향사에 참례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선조의 유훈을 받들어 되새기는 것이 후손된 도리이며 그 뜻을 지키고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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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조기윤 |
| 이날 신주를 모시는 출주례와 향사상에 제물을 진설하고, 헌관들에게 직일이 제집사 분정에 대해 논의한 결과를 보고하고, 축이 축문을 헌관들에게 올려 확인한 후 제사상에 폐백을 올리고 축문을 제사상 옆에 둡니다. 초헌관이 제물을 살피고 물러났다가, 첫 번째 잔을 올립니다. 이때 참석자들은 부복하고 축은 축문을 낭독합니다, 아헌관과 종헌관이 이어서 잔을 올리고, 축이 초헌관을 모시고 음복례를 행한 후 신주를 모신 궤를 닫고 망예례로 서쪽으로 가서 축문을 불사르고 향사가 끝났습니다. 참석자들은 제주와 안주로 음복하고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화합과 친목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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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조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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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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