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캔버스에 붓으로 마구 낙서를 해놓은 거 같다.
아이가 어렸을 때 잠시 집을 비우고 장을 보러 갔다 온 사이 아이는 손이 닿는 벽이란 벽에 온통 그림을 그려놓고 짠~하며 보여줬던 적이 있었다. 난 그림을 들여다보고 어떻게 그렸는지,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는지 살펴보기 전에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내 눈엔 낙서로 보였다. 그래서 아이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던 시선은 외면한 체 이렇게 벽에 낙서를 하면 어쩌냐고 야단을 쳤던 거 같다. 아이는 그 순간을 기억하고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 이야기를 하는데 정작 나는 그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이게 뭐야! 했던 순간은 있었던 거 같은데.
가해자는 실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 일이 그렇게 큰 일이었어? 하며 대부분 잊고 산다. 지난 시절의 폭력을 이야기하면 내가 그랬니?라며 그 순간을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더 상처를 받는다. 정작 용서를 하려고 해도 이미 기억조차 못하니까 용서랄 것도 없어지는 거다. 양심의 가책도 없고, 피해를 당한 사람이 입은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흉터로 남아 있지만 말이다. 잊을리야 그 순간을.
그런 응어리들이 박두 작가의 그림에서 느껴졌다. 마구 흘러서 흔적조차 없어야 할 아픔들이 마음 깊숙한 곳에 고요히 스며들었다가 어느 순간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흔들어 버린다고 해야할까? 분노, 용서하지 못한 울분, 서러움들이 똘똘 뭉쳤다가 어느 순간 팡~ 폭발해버린 느낌이다. 그림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모든 것을 쏟아내고 자신의 그릇은 깨끗이 비워낸 고행자같은 느낌이다. 내가 느끼는 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 흘러가는데로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거니까. 아마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이 그림들을 본다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테지만.
Wild and Pure
나의 작품은 거칠지만 속된 데 빠지지 않고, 순수하지만 화려함에 빠지지 않는다. 나는 기를 그릴 뿐 형태를 그리지 않는다. 늘 기교보다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작업을 한다. 기교는 정신을 전달하는 수단일 뿐, 때로는 정신을 펼치는 작업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나는 자신을 잊을 때 무엇인가에 사로잡힐 때 작품을 그려 나간다. 흰 캔버스 앞에 서면 제 정신이 아니고 영기(靈氣)가 들어와서 그냥 붓이 움직였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나의 작품은 무의식적으로 동기 부여가되어 창의성과 독창성을 추구한다. 그 때문에 미완성이고, 서툴고 기교가 없는 느낌이 거칠고, 순수함으로 표현되기를 바란다.
검정의 기운에서 근본적으로 단순함과 여백이 묻어 나오기 때문에 신비적이고, 정신적인 무엇인가가 떠오르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아 온 경험과 지식을 형상으로 내면의 나의 정신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없어지지 않으며 그 뜻을 품고 있기를 바란다.
"거침과 순수함", "기운과 혼"이 나의 작업이다. 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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