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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호철, 정물, 2호, 부직포에 유화, 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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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에 이어
10. 미술, 예술이란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미술에 대해 그동안 편향되게 접근해 왔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일반인들은 아직도 문화나 예술을 접하기에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핸드폰을 통해서 접근방법이 쉬워졌고, 인식자체도 넓어졌다. 옛날에는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다. 작가에 대한 고정관념. 미술가는 항상 꽤재재하거나 작업실이 지저분하다는 관념이 있었지만 그건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다.
사실 예술은 다양하다. 밝고 가벼운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 나뭇잎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 예술이 가까이 있는데 너무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인식의 차이다.
멀리 있는게 아니고 오히려 생활 가까이에 있다. 미술이 모양일 수도 있지만 색일 수도 있다. 예전에는 우중충 했지만 요즘에는 옷만 보더라도 색감이 밝아졌다.
복고풍이 유행하듯 갔다가 다시 오기도 한다. 요즘 트로트가 유행하듯 결국 예술이라는 것도 순환한다.
사실적인 그림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미 완성됐지만 지금도 사실적인 걸 그린다. 왜 그런가하면 당시 환경과 지금이 다르고, 사람도 다르니까. 어제와 오늘이 다르듯이.
예술을 넓게 보면 한없이 넉넉하지만, 좁게 보면 단편적인 것밖에 볼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림이나 예술은 주관적이다. 자기가 어떻게 느끼냐에 따라 추해지기도 하고,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그 인식을 깨기가 참으로 어렵다. 이중섭 화가의 은화지 그림도 담뱃값 종이가 얼마한다고, 펜은 얼마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무엇을 느낄 수 있겠나?
여기에 뭐를 담고 싶었을까?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함축적으로 그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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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결수 작가 작품(매일신문 기사 화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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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결수 작가의 그림에서 집을 수없이 그렸지만 저 많은 집에 사람이 살고 있을까, 비워져 있을까? 그런 의문도 던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행복한 집일까? 재개발한다면 얼마나 처량할까?
그처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문화예술에 대한 시각 자체를 바꾼다면 지역 미술이나 작업의 방향, 삶의 방향도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이지만 전체일 수도 있고, 먼곳에서 보면 전체도 개인일 수 있다. 개인이나 전체가 별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전체이기 때문에 서로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예전 다방이나 외국의 카페, 살롱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는 공간이 있었으면 한다.
깊이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어쩌면 평생에 마지막일 수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이 행사가 마지막이라면 소중할 수밖에 없다. 몇몇 사람들의 ‘적당히 하고 내년에 더 잘하면 되지’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당황스러울 뿐이다.
사실은 지난 1월 맥심gogo전 대구 전시회를 문화예술회관에서 하고 싶었다. 100호씩 최소한 50호 두점씩 내려고 했는데 몇사람 밖에 작품을 낼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까 초라할 수밖에.
아트페스티벌에도 절반 이상 작품을 안냈다. 지역에서 하니까 통한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 10년전 그림을 내거나 몇 년전 그림을 내기도 했지만 그러면 작업하지 말고 내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최소한 2년 전 그림이라도 양심껏 내라고. 그래야 최소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맥심회의 45년이 전설로 남으면 아름답기나 하지 실은 부끄럽다.
맥심회 회장 임기가 2년이다. 올해 12월이 되면 1년인데 지금 8개월이 지났지만 1년만 해도 벅차다. 어쨌든 제 책임이니 내년까지는 해보고 서울 국회앞에서도 전시하고 싶은데 지금 상황에서는 모르겠다. 몇작품이나 나올지.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그래서 부끄러운 이야기다. 그래서 하나의 단체로 만들려고 한다. 열심히 작업하는 사람이 스무명이라도 된다면 제대로 된 전시도 가능할테고 행사를 마치는대로 토론해 봐야 할 거 같다.
6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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