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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곡아트페스티벌 기간에 칠곡군민회관 2층 전시실에 전시된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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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계속
5. 작가란 어떤 사람인가?
작가라면 기본적으로 작업을 해야한다. 작가는 지금까지 살아남기 위해 무던히 힘든 점도 많았겠지만, 스스로 단단해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작업실에 가서 작품을 보면 작품 관리상태,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서 작가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전시회에 그럴싸하게 액자에 넣어놓은 것은 화장한 모습에 불과하다.
저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렇지만 작가의 삶으로는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생각한다.
저는 개인 파산을 당해서 한때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다. 가족이 생활하려면 기본생활비가 있어야 하는데 벌이가 고정되지 않아 생활이 어려웠다.
그림을 그리고 저녁에 대리운전을 하고, 집사람은 이사간 집을 청소하거나, 주유소 아르바이트도 하고, 잡일을 가리지 않고 하다보니 결국은 몹쓸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웬만한 작품들은 다 불태우고 필요한 것들만 작은 방에 보관해 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잘 버텼기 때문에 지금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후 5년이라는 기간 동안 열심히 빚을 갚고, 작품도 많이 남아있다. 그때 힘들다고 포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보면 잘 이겨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원천에는 가족들의 힘이 있었다. 제 그림의 테마가 인연이라든지 연리지인데 그 이유가 가족의 소중함, 가족이 없었다면 아마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연리지는 '가족나무'라는 뜻으로 제 그림의 테마이자 존재하는 이유다. 하루를 살 더라도, 무슨 일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열성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어려움을 겪고 나니 가족의 소중함을 깊이 느꼈고, 다음이라는 건 살아있어야 가능하지 그렇지 않다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극단적인 생각을 했던 그 순간, 스쳐갔던 시간들이 아름답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됐다.
지역 작가들에게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 건 힘들지만 버텨내라고 말하고 싶다. 결국은 작업으로 승부해야 하고, 포기하면 한때 그림을 그렸다는 것 뿐 살아남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작업을 해야 진짜 작가다. 예전에 작업을 했다는 건 과거일 뿐 지금은 작가가 아니다. 작가라면 최소한 1년에 천호. 그것도 어려우면 500호라도 작업을 해야한다.
전업작가가 되면 일년에 3~4천호는 작업해야 한다. 최소한 2천호. 한달에 100호 한점은 그려야 한다. 100호의 크기가 162*130cm다.
한달에 100호는 작업해야 작가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1년에 100호 한점도 안 그리고 20호나 30호 달랑 한장 그리는 건 아마추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저는 작업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실재로 행사를 해보면 수준 차이가 많이 난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작가들이 작업하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행사에 참여하려면 계속 작업을 해야한다. 그리고 작업만 하지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작업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이고 상처가 있는지도 알아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야 스스로 속에 있는 걸 끄집어 낼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갖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은 안타깝다.
또 힘든 작업은 싫어하고 적당히 맴도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점이 동료 작가로서는 안타깝다.
비가 오고, 폭풍우가 치고 더운 날이 있듯이 죽지 않을 만큼 견뎌낼 수만 있다면 그점이 멋진 작품으로 나올 수도 있다.
6. 선후배라는 관계가 지역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칠곡군에서는 선후배 관계가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지만 선후배라서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선후배라는 관념을 떨쳐버려야 한다. 아마추어 때는 선후배지만 일단 프로의 세계에서는 작가로서 만나는 거다.
분명히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는데 지역에는 잘 안 된다. 모든 자리에서 선후배를 따지니까 개선하고 바꿔야 되는 부분인데도 선후배이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그런 행태가 계속된다면 도태되거나 묻혀 버린다. 프로로서 이야기하고 작가니까 작업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작업을 하고 그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도 나눠야 한다.
지금은 그림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고민스럽고, 해결해 나갈 방법이 뭘지, 어떻게 풀어 나가고 어떤 재료를 쓸지 고민인데 지역에서는 그런 고민을 나눌 사람이 드물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선배가 김성수 작가다. 꼭두작가로 알려진 그 선배와 자주 작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술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본받을 점도 많고, 작업양도 많다. 그런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제가 작업을 열심히 하는 이유도 그렇다.
제 작업이 조금 특이해서 비오는 날의 습기나 먼지에 민감하다. 이런 것들이 안 맞으면 작업을 못한다. 그래서 아파트에서 작업을 하다보니 작업실이 6층이라 전시할 때마다 크레인을 불러야 하고 돈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고민하다보니 친구가 왜관공단에 판넬공장을 넓게 하는데 한군데를 제 작업실로 내줬다. 작업실 옮기는 것도 초등학교 친구들이 도왔다.
사실 순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을 벌어서 작업실을 짓고 나서 작업하겠다는 것과 돈은 없지만 작업을 열심히 하고, 하다보면 누군가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작업에 매진하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좋을까?
제 경우엔 작업실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작업공간을 가진 친구가 더 잘 활용하라고 내주기도 했다. 작업에 필요로 하니까 도와주고 싶어했다.
작업을 하다보니 다른 일들과 연결되고, 돈보다 작업에 우선을 두니 고민도 함께 해결됐다.
꿈을 가지되 순서를 바꾸면 좋지 않을까. 내가 부족한 걸 가진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줄 수도 있다.
친구가 제 그림을 좋아하고 행복하다고 하니 한점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것이 작업을 하는 이유다. 그림을 보고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고, 위안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림을 팔아서 돈을 번다는 개념은 언제부턴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돼 버렸지만, 돈을 벌어 큰집을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작업에 필요한 시설이나 습도, 온도가 되는 작업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였다.
7.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을 소장하게 됐다.
행사를 마치는대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을 보내고, 또 새로운 작품을 위해 300호를 준비 중이다.
나라에서 하는 정부미술은행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 작품이 선정되려면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
저는 세 번만에 됐고, 작가로서 영광이다. 제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에 평생 보관되면서 순회 작품전을 할 수도 있다.
액자 두께, 유리, 나무 종류까지 규격을 철저히 한다. 그래야 수장하면서 관리가 되기 때문에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제 기법이 현대적으로 컴퓨터를 이용한 특이한 작업이다보니 심사위원들이 작품을 이해 못 했다. 예전에는 캔버스에 바로 그렸는데 이제는 컴퓨터로 작업한다.
사실은 떨어지면 포기하려고 했다. 한번 선정되면 삼년간 출품을 못하게 규정돼 있는데 한번 선정되니 용기가 생겨 다시 도전해보려고 한다. 그쪽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 목표였다. 이왕 작업을 하니 작품을 보존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팔리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 그래서 도전했다.
원래는 5월에 개인전도 준비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가을에는 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언제든지 제대로 준비해서 전시회를 가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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