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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아키히토 일왕의 요청으로 천선생이 제작한 일본 황실 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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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다완의 거장, 문경 도천 천한봉선생에 대하여(2)
박윤일
경북향토사연구회 회원(문경)
Ⅲ. 문경의 찻사발 축제와 문경에서 재현한 조선찻사발
찻사발축제의 중심이 되고 있는 찻사발은 일본에서는 ‘고려다완(高麗茶碗)’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조선다완 또는 조선찻사발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된다. 찻사발을 일본에서는 고려다완이라고 부르는 것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져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KOREA의 찻잔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르고 있다.
문경찻사발축제는 문화관광부로부터 국내 최우수축제와 명품축제로 선정될 정도의 가치있는 축제로 이름이 나 있다. 해마다 오월이면 문경시 새재 일원에서 개최되며 전국 각지 및 외국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축제의 열기를 한층 더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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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선생이 제작한 귀얄다완(다완 下部에는 영친왕의 妃, 이방자여사를 표시하는 方자 낙관이 찍혀있으며, 여사는 낙선재를 방문하는 귀빈에게 이러한 다완을 선물로 사용하였다.) |
| 임진왜란 전후로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찻사발은 일본의 3대 영웅으로 불리는 도요또미히데요시, 도꾸까와이에야스, 오다노부나가장군이 애지중지하며 차를 마셨으며, 일본의 국보 및 중요문화재로까지 지정되어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여겨질 정도이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일본 상류귀족층 차인들은 조선찻사발에 매료되어 열광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오늘날 이러한 조선찻사발을 가장 완벽하게 재현했다고 평가받는 도공이 3여년전에 작고한 도천 천한봉선생이다.
그는 일본천황으로부터 화병(花甁) 등 차도구의 주문을 받는가 하면, 한국도예가로서 유일하게 일본천황의 문화훈장까지 받았다. 이를 뒤늦게 알게된 한국정부에서도 그의 문화적 공적을 인정하여 국가문화훈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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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천선생이 재현한 이도다완(기교적이거나 가식적이지 않다) |
| 일본에서 조선찻사발이 어느 정도 인식되는지 다음의 사례를 보면 좀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이 내용은 캘리포니아 대학 존코벨교수가 외국인이 본 한국문화라는 코너에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이다.
만약 일본 주요 도시에서 특별한 다회(茶會)가 있었다고 하자, 그럴 경우 대부분의 다인(茶人)들은 차를 마신 후 찻그릇을 두 손에 받쳐 들고 일반인이 보기에 표면이 우둘투둘하여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찻잔을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럴 때 소리를 낮추어 터지는 감탄사가 “고라이 자왕”이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고려다완(高麗茶碗, Korea tea bowl), 즉 조선에서 만들어진 찻잔이라는 뜻이며 일본의 차인들에게 신(神)다음으로 떠받들어질 정도로 대단한 보물이기도 하다.
일본 국영방송 NHK-TV는 한달이상 문경에 체류하며 도천선생의 일대기를 촬영하여 아시아 전역에 방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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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국영방송 NHK-TV는 한달이상 문경에 체류하며 도천선생의 일대기를 촬영하여 아시아 전역에 방영하였다. |
| 몇 년전, 일본 국영방송인 NHK-TV가 제작한 ‘Asia’s Who’s’에 코너에 한국의 도예가 도천 천한봉의 일대기가 다큐멘터리로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은 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인물들을 소개하는 것으로서 당시에만 해도 한국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도예가 천한봉을소개하는것은 매우 뜻밖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선 한국의 도예가하면 천한봉을 연상할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다. 일본의 유력 언론매체인 마이니치, 요미우리, 니혼게이자이, NHK, 후지TV 등은 앞 다투어 그의 전시회를 열거나 아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도공으로 특집 보도하고 있다.
그가 일본에서 이처럼 유명한 것은 일본의 국보와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소중히 여기는 고려다완을 가장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NHK-TV의 다큐멘터리에서도 천한봉의 작품활동의 전과정을 소개하면서 “4백년 전의 ‘고려다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직접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일본의 도자기 전문가는 그의 작품에는 가식적이지 않은 소박한 미가 있어 차인들의 마음을 끈다고 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도 그의 작품을 ‘동양미의 극치’와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지를 넘어선 예술’이라고 까지 격찬하였다.
일본인들이 극찬하는 천한봉이 만드는 분청다완같은 도자기 종류는 정확히 고증된 것은 아니지만 조선시대의 민가에서 밥그릇, 찻사발으로 사용되던 그릇이나 또 일부에서는 ‘사찰에서 차를 마시는 그릇으로 사용되지 않았을까’하고 조심스런 추정을 하기도 한다.
유약이 불규칙하게 흘러내리고 표면이 우둘투둘하여 투박해 보이는 그런 찻그릇이 일본으로 건너가 고려다완(高麗茶碗)이란 이름으로 그들의 국보나 문화재로까지 지정되어 귀하게 보존되며 오늘날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은 그저 아이로닉컬 하다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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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천 천한봉 선생과 필자 |
| 조선다완이 어느 정도 일본인에게 소중하게 여겨지는 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사실을 보면 더욱 확연해 진다. 수년전 동도(東都)에서 열린 ‘고려다완전 기조강연’에서 당시 하야시아 국립박물관장은 “이토록 오랫동안 일본인의 가슴속 깊숙이 들어와 감동을 주고 경건한 신앙의 대상으로 떠오른 물건 가운데 조선의 다완(찻사발)같은 것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라고 부르짖었다.
그의 집안은 우리가 막사발이라고 흔히 부르는 고려다완을 400여년간 가보로 소중히 간직해 내려온 것이다. 오늘날 유럽 등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일본의 도자기는 조선이 그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에서 도자기의 원조로 추앙받고 있는 한국인 도공 심수관, 이삼평기념비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임진왜란을 도자기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일본은 한국의 수 많은 도공들을 납치해가 도자기를 만들도록 하였고 그때의 기술을 바탕으로 일본 도자기 산업을 발전시켜 오늘날 일본이 도자기 강국의 하나로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이 글은 저자의 개인적인 저술로 학계의 일반적인 이론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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