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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봉수제도와 칠곡 박집산 봉수대(3)/정석호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6년 0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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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집산 봉수 노선도(저자 설명 2로 간봉 중 각산과 구미(건대산) 사이가 박집산 봉수대로 판단됨)


조선시대 봉수제도와 칠곡 박집산 봉수대(3)

정석호
경북향토사연구회 회원(칠곡)

Ⅵ. 봉수제의 폐지

봉수제는 성립 초기 본래의 설치 목적과는 다르게 제대로 그 기능을 발휘한 사실이 적어 여러 폐단을 노출하게 되었다. 1510년 삼포왜란 때 불을 올리지 않았고, 1513년 왜적이 인천, 충청과 전라지역에 침입해 20여 일간 체류했어도 봉화를 올리지 않았다. 

특히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에도 한 달이 넘도록 봉화를 올리지 않은 경우가 발생했다. 더욱이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했을 때에는 왜군들이 곳곳의 봉수를 파괴하기도 했지만 전국의 모든 봉수가 끊어졌다. 사실상 조선의 봉수는 임진왜란 이후 그 기능이 완전히 마비됐다.

이에 따라 조정에서는 봉수무용론과 봉수의 폐단을 주장하는 일이 점차 늘어났다. 급기야 임란이 끝난 이후 1605년(선조 38)에는 말을 타고 가서 소식을 전하거나 사람이 직접 달려가서 소식을 전하는 파발제가 실시됐다.

조선 초 세종 때 확립된 봉수제도는 구름이 어둡게 끼거나 바람이 심하여 대응 봉수의 후망이 곤란할 시에는 신포, 뿔나팔, 징 등의 시각과 청각에 의한 신호 수단을 이용하였으나, 봉수간 전달이 용이하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부침을 거듭하던 봉수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설치와 폐지를 거듭하다가 1885년 전신, 1890년대 전화 등의 근대적인 통신방식이 도입되면서 고종 때인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팔로봉수(八路烽燧)의 폐지와 다음해 각처 봉대와 봉수군을 폐지함으로서 모든 봉수가 최종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 방치하고 관심 밖에 있어 제대로 봉수대에 대한 연구가 뒤따르지 않았다. 산성과 더불어 우리의 전통 군사시설인 봉수대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조만간 이뤄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Ⅶ. 박집산 봉수대에 대하여

1. 박집산 봉수대의 위치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에 인동현 소재의 봉화 2곳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무림리 산 44-1번지(기산면 봉산리 산 1-3, 해발 357m)에 위치한다.

↑↑ 박집산 봉수대 항공 위치도(출처 네이버 지도)

↑↑ 박집산봉수대 유지 표지석_정면


2. 고문헌에 나타나는 박집산 봉수대

박집산 봉수대는 지리지에 거의 언급되고 있는 내지봉수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50권, 지리지 경상도 안동 대도호부 인동현편(【태백산사고본】 54책 150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5책 644면)에는

“천생산 석성(天生山石城) 【본현 동쪽 8리에 있다. 둘레가 3백 24보인데, 석벽(石壁)이 반이 넘고, 천연으로 된 험한 곳이다. 안에 우물 하나와 작은 못 둘이 있다.】 역(驛)이 2이니, 신역(新驛) 【본현에 있다.】·신역(新驛) 【약목에 있다.】 이다. 봉화가 2곳이니, 건벌산(件伐山)은 본현 서쪽에 있다. 【남쪽으로 약목 박집산(朴執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해평(海平) 반이산(反伊山)에 응한다.】 박집산(朴執山) 【남쪽으로 성주(星州) 각산(角山)에 응한다.】 이다.” 라고 나타나고 있으며,

신동국여지승람 제27권 경상도(慶尙道) 인동현(仁同縣)에는 【봉수】건대산 봉수(件岱山烽燧) 현의 서쪽 3리에 있다. 남으로 박집산(朴執山)에 응하고, 북으로 선산부(善山府) 석현(石峴)에 응한다. 박집산봉수(朴執山烽燧) 남쪽으로 성주(星州) 각산(角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건대산(件岱山)에 응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 문헌 고려대학교도서관 고지도 콜렉션

↑↑ 문헌2 국립중앙도서관 해동여지도

↑↑ 문헌3 한국학 자료포털

↑↑ 문헌4 국립중앙도서관 팔도지도

문헌상에는 慶尙道地理志(1425), 慶尙道續撰地理志(1469), 世宗實錄地理志(1454), 新增東國輿地勝覽(1530), 輿地圖書(1757~1765), 大東地志(1864) 등에 나타나고 있으며, 이외에도 여러 고지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 문헌상 오기_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저자 설명 각산 봉수대 우측 낙동강을 건너 금호강 위편에 칠곡 박달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그 위쪽에 건대산 봉수대가 보인다)

하지만 일부 오류로 보이는 지도도 있다. 고려대학교(한적실) 소장 海東八道烽火山岳地圖를 보면 박집산을 박달산으로 표기되어 있는 바 오류인 것으로 판단된다. 낙동강 건너에 박집산(박달산) 봉수대가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충북 영동의 박달산에도 봉수대가 있었다고는 하나 지도상 위치로 봐서는 오기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3. 박집산 봉수의 노선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 의하면 안동도 약목현(苦木懸) 소재의 봉화로현의 남쪽 15리에 있으며 남으로 성주목 각산 봉화(角山奉火), 북으로 인동현 건대산봉화(件代山奉火)에 응한다고 하였다. 조선시대 편찬된 모든 지리서에서도 동일한 내용이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 고종 31년(1894) 폐지시까지 줄곧 같은 노선이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집산 봉수대의 간봉으로서의 위치를 살펴보면,

『중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거제 가라산봉수(加羅山峰機)에서 초기하는 2거간봉 2노선의 15번째 봉수로 2거 직봉 노선인 충주 소재의 마산봉수(馬山條慶)에 연결된다고 하였다. ‘여지도서’는 성주목 봉수조에서 말응덕산 봉수는 현풍 소이산에서 응해 화원현 성산에 알리고, 성산 봉수는 하빈현 마천산에 알리며, 각산 봉수도 하빈현 마천산에서 응해 북쪽의 약목현 박집산 봉수에 알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라 박집산봉수대를 연결하는 2개 간성 봉수 루트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가라산(거제)▸미륵산(고성)▸우산▸천시▸곡산▸가을포(진해)▸파산(함안)▸가막산(의령)▸미타산(초계)▸망산(고령)▸이부로산(성주)▸성산(성주)▸각산(성주)▸박집산(인동)▸연산▸연풍▸충주
2)천송보(웅천)▸사화랑▸고산▸성황당(창원)▸안곡산(함안)▸소산(창녕)▸소이산(현풍)▸말응덕산(성주)▸성산(성주)▸마천산▸각산(성주)▸박집산(인동)▸연산▸연풍▸충주

따라서, 각산 봉수는 웅천과 거제에서 출발한 2개 내지봉수의 집결 봉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각산 봉수는 조선시대 성주 지역의 5개 봉수중 행정구역 변경으로 사실상 유일(성산 봉수는 군사지역)하게 남아 있는 봉수이다.


4. 박집산 봉수의 규모

박집산 봉수대의 규모는 다음 표와 같다.

↑↑ 박집산봉수대의 규모

박집산 봉수대의 봉수군 주거지(건물지)의 배치유영(연대 단독형, 일곽형, 연접형, 분리형)에 따른 분류를 추정해 보면 연대와 주거지가 따로 있는 분리형으로 판단된다.(실제 약목면 박집산 봉수대 아래에 배석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음) 연변봉수의 경우 4가지 배치유형이 고루 분포하고 있는 반면 내지봉수는 연접형과 분리형이 주를 이루고 있는 조사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된다.

현재 봉수 내부시설은 민묘 2기가 조성되면서 훼손되어 지표상에서는 확인할 수 없지만 석축 방호벽과 출입시설은 잘 남아있다. 방호벽을 통해 본 봉수의 평면형태는 남북 장축의 타원형이다. 규모는 장축 30m, 단축 18.8m, 전체 둘레 74.8m 정도이다.

출입구는 별도 시설없이 방호벽을 절개한 형태의 개방식으로 남측에 1개소를 내었다. 방호벽은 4벽이 모두 토석 혼축으로 되어 있는데, 잔존 높이는 외측에서 90cm 내외이고 폭은 1.4m 정도이다. 방호벽의 구조는 자연능선을 깎아낸 후 자연할석을 이용하여 외면을 돌로 쌓고 그안쪽은 작은 할석과 흙으로 채워 넣은 내탁식으로 축조하였다.(이철영)

Ⅷ. 봉수의 문화재 지정

경북지역 6개 봉수(烽燧) 유적이 국가지정문화재(사적)가 됐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부산 응봉과 서울 목멱산 일대에 있는 44개 봉수 유적 중 14개소를 사적 ‘제2로 직봉’으로 명하고 지난 10일부로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했다.

↑↑ 제2로 지정대상 봉수_14개 봉수 유적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경북지역 봉수 유적은 △안동 봉지산 봉수 유적△경주 접포현 봉수 유적 △의성 계란현 봉수 유적 △영천 성황당 봉수 유적 △영천 여음동 봉수 유적 △영천 성산 봉수 유적 6곳이다.

문화재청은 2021년부터 조사·연구를 시작해 봉수 유적을 사적으로 처음 지정했다. 22곳을 정밀히 조사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16곳을 사적으로 지정 예고 했으며 이번에 봉화 지역 유적 2곳(용점산, 창팔레산)을 뺀 14곳이 최종 지정 됐다.

↑↑ 제5로 지정대상 봉수_16개 봉수 유적

“봉수 유적은 조선의 중요 군사·통신 시설로서 그 시대의 군사·통신 제도를 현저하게 보여준다”며 “5개의 봉수 노선은 조선 시대 지리 정보에 대한 보고”라고 지정 사유를 설명했다. 이어 “문화적·사회적 연결 고리를 갖고 있으나 지리적으로 서로 접하지 않은 ‘연속 유산’ 사적은 처음”이라며 “‘제2로 직봉’이라는 본 명칭에 부 명칭을 더하는 식으로 각각의 명칭을 부여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2로 직봉’ 노선에 위치한 다른 봉수 유적도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를 독려할 계획이다. 또 아직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제5로 직봉’도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Ⅸ. 결어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 고취와 문화관광자원 개발 측면에서 내지봉수에 대한 정비·복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봉수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봉수 본래의 모습을 왜곡시켜 복원하거나 복원 범위를 연조에만 국한함으로써 내지봉수의 전체적인 구조나 배치를 종합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고 내지봉수대의 전체적인 구조와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형(典型)에 대한 연구와 고찰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안타깝게도 연구조사 중 ‘97년 문화유산의 해 사업결과보고서(문화체육부 문화재관리국 발간)’에 따르면 경상북도에서 칠곡군 박집산 봉수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행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현재 관련자료는 찾을 수 없었으며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관련자료 수집을 위해 노력하여야 하겠다.

북방과 왜구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리 정보를 반영한 봉수 유적은 학술 가치가 매우 높지만 여러 지방자치단체에 걸쳐 있고, 일부 유적의 경우 험준한 지형에 있어 지속적인 관리나 정비가 어려워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

가산산성, 관호산성(토성)과 함께 호국의 고장을 표방하는 칠곡군의 대표적인 관방유적 중 하나인 박집산 봉수대를 호국정신의 계승차원에서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 이에 대한 정비·복원사업을 서둘러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약목면 배서기(배석재) 마을 주변에서 우물(샘)과 경작지 존재 유무 등을 추후 조금 더 조사해 본다면 박집산봉수대 유지를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박집산 봉수대 또한 치밀한 고증을 거쳐 올바르게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조선 시대 국방의 한 축을 떠맡았던 중요 사적으로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전문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조선시대 봉수대의 건물지 고찰(이영우, 2020)
전국 봉수유적 기초학술조사(문화재청, 2015)
전국 봉수유적 심화학술조사(문화재청, 2016)
조선시대 봉수대와 봉수군 연구(창원대학교 홍성우, 2021)
조선시대 봉수군의 주거에 관한 연구-경상도 지방을 중심으로(이철영, 윤재웅, 2005)
조선시대 내지봉수에 관한 연구(윤재웅, 이철영, 2009)
산림문화자산에 관한 실태조사 연구-봉수대를 중심으로(㈔산림문화콘텐츠연구소, 2012)
기타 언론 및 인터넷 자료


이상으로 조선시대 봉수제도와 칠곡 박집산 봉수대 연재를 모두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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