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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진남교반과 고모산성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6년 0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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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경에는 경북 제1경으로 알려져있는 마성면 신현리의 진남교반이 있다. 진남교 일대의 산세와 하천, 고성 등의 경관을 아울러 1933년 경북8경 가운데 제1경으로 지정한 바 있다.

진남(鎭南)이란 남쪽에서 침입해오는 왜적을 방어한다는 국토안보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국적으로 ‘진남’이 들어가는 지명이 여럿 있으며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때 왜군을 토벌한 주무대인 한산도 일대를 진남군이라 불렀다.

여수에는 진남관이라하여 왜군 토벌과 관련한 관문이 있으며 경주 감포에는 바다로 잠입하는 왜구를 토벌하자는 의미로 기림사에 진남루라는 누각이 사찰 경내에 있다. 그 밖에도 공주 공산성 정문에 진남루라고 각자된 현판이 걸려 있다.

마성면 신현리에 위치한 진남교반의 의미는 남해안이나 동해안처럼 해안이 아닌 내륙의 요새로써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입지조건을 살펴보면 마성면 신현리의 진남교반은 한반도 남쪽에서 북부를 통과하는 인후(咽喉) 즉 목구멍과 같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사람이 인후를 통하여 숨을 쉬고 음식을 섭취하므로 인후가 막히면 생명이 위태롭다.

마성의 진남교반이 한반도의 인후와 같은 곳으로 이곳을 방어함으로써 국가가 안녕하고 이곳을 지키지 못했을 때 나라에 대재앙이 벌어졌다. 왜군이 현해탄을 건너와 서울로 진출하기 위한 가장 수월한 길이 문경새재를 통과하는 영남대로이다.

충청도 보은군 속리산에서 출발하여 상주, 문경, 예천, 영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남쪽에서 올라오는 외적을 방어하는 천혜의 군사장벽이다. 소백산맥이 지나가는 이 구간에서 북쪽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통로가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일대 영강이 흘러가는 진남교반이다.

진남교반은 영강을 가운데 두고 한쪽은 지역의 명산인 오정산이 버텨서고 반대쪽은 작약산의 끝줄기인 어룡산이 맞닿아 있다. 오정산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부운령 배넘이산 달고개 운달산에 닿아있으며 다시 소백산맥의 본맥인 1100m의 대미산에 닿아있다.

한편 어룡산을 거슬러가면 작약산, 뭉우리재, 갈령, 형제봉을 지나 해발 1058m인 속리산 천왕봉으로 이어진다. 소백산맥에 솟아있는 대미산에서 출발한 운달지맥의 오정산과 보은의 속리산 천왕봉에서 출발한 어룡산이 진남교반에서 영강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맞대고 있다.


이렇게 진남교반은 오정산과 어룡산이 맞닿아있고 영강이 그 사이를 10리의 거리로 여섯 구비나 휘감아 돌아간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외적을 방어하는데 있어 진남교반만큼 중요한 요세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영강은 속리산 천왕봉에서 출발하여 상주시 화북면 장각폭포를 거쳐 쌍룡계곡을 지나 가은에서 양산천을 만난다. 양산천은 봉암사 주산인 희양산에서 시작하여 십여 리를 내려와서 새재초점에서 발원하는 문경천을 진남교반에서 만난다.

진남교반에서 10여 리를 대여섯 구비 돌아 점촌을 거쳐 함창에서 이안천과 다시 합류하여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오정산과 어룡산과 영강이 굽이굽이 돌고돌아 산태극 수태극 진남교반을 연출한 것이다.

조선을 침략한 왜적들은 부산 동래에 상륙하여 밀양, 대구, 군위, 선산, 상주, 문경새재를 거쳐 한양으로 올라갔다. 선산에서 김천과 대전으로 가는 길도 있지만 이 길은 훨씬 돌아가는 길이며 상주, 문경, 충주를 거쳐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이 지름길이다.

육로뿐 아니라 수로를 이용하더라도 삼강진이나 하풍진에 배를 대고 문경새재를 통하여 수안보에서 다시 배를 타고 충주를 거쳐 한양으로 들어간다. 육운하든 수운이든 왜군들이 남해안에 도착하여 단거리에 한양으로 북진하려면 반드시 상주를 지나 진남교반을 거쳐 문경새재를 넘어가야 했다.

옛사람들은 지리를 꿰고 있었기 때문에 진남교반을 내려다보는 지점에 고모산성과 고부산성을 쌓아 지켰다. 고모산성은 오정산 끝자락이며 고부산성은 어룡산에 있으며 함창 뒷산인 작약산과 연결된다.

두 성이 영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의 산맥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적의 진격을 제어했다. 진남교반이야말로 한반도의 목구멍과 같은 요새이며 방어진지이다.

이러한 요새를 두고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은 군사를 물려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조총을 소지한 왜적을 상대하다 전멸했다.

함경도 변방에서 여진족을 상대로 기마병을 지휘하며 활과 창을 휘두르던 전법으로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을 상대한 것이다. 그 결과 3만 대군이 몰살했으며 그 여파로 임진 정유 양란으로 7년 동안 전국토가 쑥대밭이 되었다.

시간을 거슬러 신라 말기, 후삼국 통일의 주역인 왕건과 견훤의 접전도 진남교반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당시 상주목에 속했던 산양과 용궁에서 왕건과 견훤은 후삼국 통일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문경시 가은 출신의 견훤이 무진주 즉, 오늘날의 광주에서 궐기했지만 문경 지역은 그의 고향이자 부친인 아자개의 터전이었다.

용주벌 원산성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용호쌍박으로 일전일퇴를 겨루다가 산양근품성전투에서 왕건이 견훤에게서 성을 빼앗는다. 이 근품성전투와 원산성전투를 치르기 위해 남하하던 중 왕건은 진남교반에서 길을 잃고 군사들과 함께 우왕좌왕했다. 그때 토끼 한마리가 산비탈을 타고 도망가는 것을 보고 따라가다가 길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온다. 진남교반 왼쪽으로 비탈을 끼고 좁게 드러난 벼랑길이 바로 왕건과 토끼의 전설이 만들어낸 토끼비리 길이다.

토끼비리길과 맞닿아있는 고모산성은 2천여 년 전에 쌓은 성으로, 지금은 석성의 모습이지만 처음에는 토성으로 시작했다. 요새로 정평나있는 고모산성은 고대로부터 진남교반을 이용하여 국토를 지켜온 산성이다.

특히 고모산성의 배수구는 2천 년 세월을 격하면서도 원형을 간직하고 있을뿐아니라 지금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성벽 맨 아래에 경사를 두고 12m 넓이로 층층으로 제작된 고대 배수구는 세월과 함께 공간적으로 많은 상념을 불러 일으킨다.

그 외에도 진남교반에는 봉생마을이 있고 마을 야산에 봉생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조선시대 서애 유성룡 대감께서 안동에서 한양을 왕복할 때 진남교반을 조망할 수 있는 봉생정에서 꼭 하루씩 머물렀다고 한다.

봉생정에서 내다보는 진남교반의 정경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국가 운명을 판가름하는 비장함도 함께 느낄 수 있는 풍광이다. 앞은 영강이요 왼편은 고모산성이요 오른편은 고부산성이 있는 어룡산이 솟아있다. 21세기 산태극 물태극을 이루며 빼어난 경관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진남교반을 잘 활용한다면 문경지역에 새바람이 일어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고녕가야선양회 대표 지정

↑↑ 지정 스님
문경 봉천사 주지
상주문경함창고녕가야선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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