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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무용宮中舞踊 무고舞鼓 영해에서 만들어지다(3)/이영근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6년 0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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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무용宮中舞踊 무고舞鼓 영해에서 만들어지다(3)

이영근
경북향토사연구회 회원(영덕)


Ⅵ. 『악학궤범』의 무고


2. 진연(進宴)·진찬(進饌)·진작(進爵)의 무고

 무고는 사신을 위로하는 잔치(使臣宴)나 회례연(會禮宴), 진연(進宴) 및 종친·형제간의 잔치(宴享)등에 폭넓게 사용되었다. 무고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도록 한 태종 2년(1402)의 『실록』에는 군왕이 베푸는 잔치나, 의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행한 잔치에 무고를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악과 향악정재의 비율이 대게 3:2 정도 되도록 배역하였는데 술잔을 올리는 의식에 맞추어 무고는 대략 잔치의 후반부에 올려졌다. 예악을 크게 정비한 세종 때도 무고는 계속되었으며 연산군(燕山君, 1494~1506)의 폭정으로 반정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중종(中宗, 1506~1544)은 문란해진 연산군 때의 예악정비에 다시 힘을 기울였다. 

 중종 13년(1518)에는 무고정재의 정읍사를 오관산(五冠山)으로 대용하였다. 이렇게 대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읍과 오관산의 음률이 서로 맞았기 때문이었으며, 이때 반주음악이 바뀐 것은 아니고 동일한 음악에 가사만 대용하여 바꾸어 썼다. 음악 가사를 대용한 이유는 남녀 간의 정을 노래한 음사(淫詞)의 노래보다는 효(孝)를 주제로 한 오관산이 궁중 잔치에 더 적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관산도 『고려사』의 속악곡이었다.

 이 기록 이후 고종 말기의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가 발견되기 전까지 무고의 기록은 여러 잔치에 사용된 그 명칭만 볼 수 있을 뿐 실제로 어떤 가사와 춤이 추어졌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숙종 조부터 각종 진연·진찬·진작의궤에 무고가 사용된 용례만을 볼 수 있는데 대개 외연(外宴)인 경로연이나 기로소에 입사하는 임금에게 올리는 잔치에서 아래 [표 1]과 같이 추어졌다.

↑↑ [표1]

 [표 1]로 외연의 춤 순서가 거의 고정화 된 것을 볼 수 있다. 초무, 아박, 향발, 무고, 광수무의 순서가 숙종 32년 기록부터 순조 29년 기록까지 일치한다. 고종조 신축년(1901)의 진연 때도 황제의 위용을 나타내는 수단이 된 때문인지 향당악 정재가 위의 [표 1]에 비해 많이 쓰이지만 초무, 아박, 향령(響鈴), 무고의 순서로 기본이 계속 지켜졌다.  즉 외연의 기본 정재는 이상의 다섯 가지 정재이고 잔치를 마치는[파연(罷宴)] 정재로는 처용무가 쓰였다. 

 한편, 내연(內宴)은 대비의 환갑(環甲)이나 망오(望五) 등 내전(內殿)을 위한 잔치인데, 이때 무고는 필요에 따라 사용되었다. 즉 수명장수의 상징인 천도(天桃)를 헌상하는 내용을 담은 헌선도(獻仙桃), 또는 연꽃으로부터 나온 선녀가 잔치 자리를 축복하는 연화대(蓮花臺), 그리고 천년 만세를 기원하는 수연장(壽延長) 등의 정재들이 잔치의 목적에 주효한 것으로써 취용되었다. 

 이처럼 무고는 조선 500년의 역사 속에서 의식의 춤으로 계속 추어졌다. 조선의 지방 관청에서는 정초의 망궐례(望闕禮), 향사례(鄕射禮), 향음주례(鄕飮酒禮)의 예연(禮宴)이나, 또는 방방(放榜)에 급제하여 돌아오는 관리 후보의 환영식, 그리고 그 지역에 부임해 오는 관리의 환영식 등의 곡연(曲宴)에도 무고를 춤추었다. 

 『국조오례의』에는 ‘음악이 만일 갖추어지지 못한 고을이라면 반드시 악을 쓸 필요는 없지만, 예악을 쓸 때는 상시(常時)하는 바에 따라 주악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런 주악 때 ‘주인의 자리는 동쪽 벽에서 서쪽을 향한다(主人位於廳東壁西向)’고 하였다. 즉 지방 관청의 정청(正廳)은 동헌(東軒)인데, 이 동헌의 좌향은 전체 건물의 동쪽에 자리하였으며, 동벽서향의 대청이 펼쳐져 있었다. 

 따라서 이 앞에서 춤을 추기 위하여 동쪽을 상위(上位)로 해야 한다. 그러나 궁궐 정청의 좌향은 북벽남향으므로 무고춤에서 검은색 의상을 입은 무용수(기녀, 여령, 무동은 4방색의 옷을 입지 않았다)가 북쪽 임금의 자리 쪽에 자리한다. 말하자면 무고를 둘러싸고 북쪽에는 검은색 옷을 입은 기녀가 동쪽에는 청색 옷, 남쪽에는 홍색 옷, 서쪽에는 흰색 옷을 입은 무용수가 자리한다. 따라서 궁중의 좌향(坐向)에 맞추어서 북쪽의 흑색 옷이 정청에 가장 가깝게 서게 되어 이를 상위라고 한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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